장부영 박사의 칼럼, "나의 고난과 욥의 고난" (My Sufferings and Job’s Sufferings) (3)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교수

이창희 기자

작성 2020.06.29 23:01 수정 2020.06.29 23:01

* Calvin Theological University 장부영 박사 *

[나의 고난 욥의 고난] (My Sufferings and Job’s Sufferings) (3)

 

하나님께서는 부모와 같이 매를 드시기 전에 몇 차례에 걸쳐서 타이르십니다. 먼저 말씀을 들려주십니다. 설교말씀을 통하여 타인의 권면이나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할 경우에는 다시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하여, 즉 꿈에나 주위의 사건들을 통하여 깨닫게 하십니다. 그래도 깨닫지 못할 경우에 직접 매를 드십니다. 하나님의 매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주로 세 가지를 사용하십니다. 다윗과 같이 원수에게 붙이든가, 기근과 같은 생활의 고역을 주시든가 아니면 온역과 같은 질병으로 치십니다. 매를 드시면 분이 풀리셔야 매를 놓습니다. 하나님의 분을 풀어드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매를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분을 풀어드리는 방법은 매를 맞아주고 잘 못했다고 회개하고 비는 길밖에 없습니다. 빌지도 않고 매를 안 맞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노하십니다.

 

제가 어렸을 때에 누님이 학교에 가지 않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매를 안 맞으려고 도망가니까 아버지께서 화가 나셔서 끝까지 쫓아다니시며 더욱 심하게 때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께 범죄 했으면 일찌감치 두 손 들고 회개해야 합니다. 변명하면 변명한 만치 맞습니다. 도망가면 더 아프게 때리십니다.

 

매를 맞으면서도 돌아올 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사야는 안타깝게 외쳤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매를 더 맞으려고 더욱 더욱 패역하느냐 온 머리는 병들었고 온 마음은 피곤하였으며”(1:5). 매를 맞을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울면서 회개해야 합니다. 때리시면 때릴수록 하나님의 품으로 더욱 파고 들어가야 합니다. 마치 매를 맞으면서 엄마의 치마 속으로 파고 들 듯이 말입니다.

 

둘째로,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 이것은 고난당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천재지변으로 이재민이 되었다든지 이웃집에 화재가 나서 화를 당했다든지, 남의 차가 와서 들이받아서 교통사고로 고통을 당하는 것들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앙적으로 볼 때에 고난당할 만한 이유가 없는데 당하는 고난을 말합니다. 현재의 고난의 원인을 찾지 못할 때에, 불교에서는 전생의 업보로 돌립니다. 애매하게 당하는 고난은 엄격히 따지고 보면 타인에 의한 고난이거나 고난당하는 이유를 모를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욥과 같이 사단에 의해서 고난을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기에게 고난당할 이유가 없을 때에 욥기에서 이것을 까닭 없는 고난이라고 합니다(9:17).

 

욥은 당대에 가장 의롭고 경건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칭찬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은 기상천외한 연속적인 재난을 만나게 되어 고난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재산과 10남매 자녀들이 하루아침에 희생되었습니다. 삼풍백화점이 붕괴될 때에 보니까 한 자녀가 희생되었을 때에도 몸을 가누지 못하고 슬퍼하며 좌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욥은 열 자녀가 하루아침에 희생당했으니 얼마나 고통이 컸겠습니까? 설상가상으로 욥은 자기 몸이 악창으로 인하여 순식간에 욥의 인생은 완전히 뒤집혀버리고 말았습니다. 생지옥의 고통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내려, 욥은 기와조각으로 피고름 나는 몸을 긁으며 신음하게 됩니다. 가장 사랑하고 믿었던 아내까지도 하나님을 욕하고 죽어버리라고 저주합니다. 이러한 정황 속에서 욥은 그의 세 친구들과 고난의 수수께끼를 풀어보겠다고 열띤 논쟁을 하게 되는 우습지 않은 광경이 벌어집니다.

 

세 친구들은 한 결 같이 욥이 고난당하는 데는 원인이 있다고 주장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생각하여 보라 죄 없이 망한 자가 누구인가 정직한 자의 끊어짐이 어디 있는가?”(4:7). 죄가 없으면 왜 이런 고난을 당하느냐? 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욥은 자기가 당하는 고난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절망에 빠져 하나님은 무죄한 자의 고난을 비웃으시는 분이 아니냐?”(9:23)고 반항도 해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욥이 고집하고 있는 자기의 의를 책망하시면서도 세 친구들은 욥과 같이 정당치 못하다고 책망하시며 욥의 중보기도를 통하여 용서해 주시겠다고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인, 인과법칙에 의한 고난이 아니기 때문에 까닭 없이 당하는 고난으로 애매히 당하는 고난이라고 했습니다.

욥의 고난은 주님의 고난의 예표입니다. 그의 고난을 비웃던 세친구들이 욥의 중보기도가 아니면 용서받을 수 없었던 것과 같이, 세상 사람들은 주님의 중보기도 없이는 용서받을 수 없습니다. 이 주님의 고난을 생각할 때에 애매하게 당한다고 불평할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인내해야 합니다. 애매히 고난을 받아도 하나님을 생각함으로 슬픔을 참으면 이는 아름답다고 했습니다(벧전 2:19).

 

셋째로,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이 있습니다(벧전 2:20). 이는 좋은 일을 하고도 뺨을 맞는 격입니다. 성경에서 선을 행한다는 말은 특히 주를 위한 일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선을 행함으로 당하는 고난은 주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리스도적 고난 또는 그리스도인의 고난으로 자원하는 고난입니다. 이 고난은 십자가를 지는 고난으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동참하는 고난을 의미합니다.

(2)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고난에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실, 고난에는 두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 하나는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가?”하는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그 고난에 대한 나의 반응은 무엇인가?”하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에 대하여 결정하기 전에 고난의 원인이 무엇인가? 를 캐내려는데 정력을 소모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원인에 집착하여 신경을 쓰는 만큼, 다른 사람에게, 심지어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품게 되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를 보면, 욥의 세친구들이 한결같이 고난의 원인이 무엇이냐?”의 문제를 놓고 열띤 논쟁을 벌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문제는 개의치 않고 있으며, 욥의 고난의 원인을 결코 설명하시지 않고 계십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고난의 원인에 매여, 과거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현재 고난을 당하고 있는 마당에 너는 어떻게 하겠는가?“에 대하여 결정해야 된다는 뜻입니다.

 

성경 전체를 통하여 자세히 살펴보면, 고난의 원인에 대한 논쟁을 반응에 대한 논쟁으로 전환시키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현실적인 문제는 누구에게 책임이 있느냐? 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은 고난을 당할 때에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난을 피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그러다가 피할 수 없게 되면, 반항하며 최후에는 발악을 하게 되는데 이것이 생명의 본능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성경 말씀은 고난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1:2)고 야고보 선생은 권면합니다.

 

베드로는 더욱 더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고 권고하고, 잠간 동안 근심하게 되나 즐거워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벧전 1:6).

 

하나님께서 고난에 대하여 긍정적인 자세를 가지라고 하시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고난이란 결과적으로 무엇인가를 낳기 때문이요, 생산적인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종합해보면, 고난을 통하여 인내와 연단과 소망에 이르고, 하나님께로 가까이 갈 수 있는 성숙된 믿음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고난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 하느냐?에 따라서 하나님에게 가까워질 수도 있고 멀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무슨 잘못이 있기에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합니까?” “내가 무엇을 잘 못했단 말입니까?” “왜 하나님께서 나에게 이런 고통을 주십니까?” “내가 이토록 고통스러울 때, 도대체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이러한 불평불만에 매달리는 사람은 흔히 하나님을 원망하며 등을 돌리거나 자기 자신을 치명적인 절망으로 몰아넣기 쉽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토록 고통스러울 때에도,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장 훌륭한 반응을 찾고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은 고난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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